안녕하세요.
테라 생태계에 피바람이 불었네요. 테라 생태계에 투자하셨던 분이라면 무슨 말로도 위로를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번에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이번 사태로 루나가 사기였다니, 폰지였다니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루나와 UST 가 생태계를 이탈할 때 exit liquidity 가 필요한 점에서는 폰지의 형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둘은 테라 메인 넷의 거버넌스 토큰과 가스비로 활용되는 코인으로 분명한 수요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순히 루나가 폰지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레거시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쓰다가, 테라 블록체인의 디앱을 사용해보았다면 놀라운 UI / UX에 감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크립토를 이용한 금융의 혁신 사례라고 보였기에 테라의 몰락이 더욱 마음에 아픕니다.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경제와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소로스 공격 (환율 공격)을 당한 것이 맞는지, 아닌 지에 대해서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이러한 이슈는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격당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 결국 언젠가는 당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결과가 어찌 되었든 테라 커뮤니티의 새로운 금융을 위한 노력이 무시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후에 누군가가 테라의 흔적을 보고 더 나은 생태계를 창조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모든 시스템도 그렇게 발전해왔던 것이겠죠. 그동안 고생하신 테라 커뮤니티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라는 니체의 말처럼
테라 커뮤니티도, 투자자분들도, 저도 지금의 역경을 이겨내고.
시장을 떠나지 않으면 기회는 계속 오니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제가 이번 사태로 인해 느낀 점을 복기하며 더욱 성장하고자, 개인적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그냥 혼자 생각한 부분이 많은데 틀린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Death spiral
정말로 Death spiral 이 일어났네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취약점으로 흔히 거론되던 죽음의 소용돌이 (Death spiral)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루나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루나 - UST는 일반적인 알고리즘 스테이블처럼 (메인 넷 없는) 토큰 - 스테이블 코인의 관계가 아닌,
메인 넷 거버넌스 코인 (LUNA) - 스테이블 코인 (UST)의 관계이기 때문에, 루나와 UST는 테라 메인 넷에서 트랜잭션이 있다면 항상 가스비만큼의 자연스러운(organic) 한 수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페깅이 복구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페깅이 회복될지, 안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엄청난 루나의 발행량과 투심 박살로 단기간 회복을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계속 루나와 UST에 대한 수요는 메인 넷이 성장할수록 더 강해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 어느 시점에서는 정말로 테라 생태계가 공격당하는 경우는 테라가 너무 커져서 불가능해질 (too big to fail)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UST 시총 > 루나 시총으로 인한 뱅크런 시나리오도
저는 루나는 UST의 담보가 아니며, 단지 충분하게 페깅을 받쳐줄 유동성 (~=호가, 매수세)만 있으면
페깅이 조금 떨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패착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이전에 테라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신뢰를 중요시했는지.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신뢰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가격과 추세가 결정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루나의 가격과 페깅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와중에는 저도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공포감이 좀 더 빨리 들었으면 살았는데
확신이 있던 사람이라도, 디페깅이 일어난 것을 보고 UST 이탈을 하려는 이가 아주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페깅이 1불로 돌아오기 전에 계속해서 매도가 나오고. 그걸 보고 또 공포가 만들어지고. 정말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루나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지난 시점은 페깅이 깨지고 난 뒤 발행량 한도를 해제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행량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되면서 호가창이 소화할 수 없는 양이 계속 쏟아지더군요.
UST 차트를 보면서 느낀 점은 천장 값은 1 USD인데, 하방은 0 USD이니
1불에 가까워질수록 기대수익이 낮아져 (예, 0.8 -> 1불은 20%, 0.9 -> 1불은 10%)
한번 디페깅이 크게 나 저점을 보여준 상태에서는 0.6~0.9처럼 높은 가격에서는 매수세를 기대하기가 참 힘들고.
오히려 숏 포지션의 손익비가 너무 좋아서. 페깅을 0.5, 0.6 까지는 올릴 수 있어도 1불로 올리기는 정말로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오더북, AMM 형태가 아닌, 옥션 방식으로 코인을경매해서 페깅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떤가 하고 생각을 했네요.
시장 참여자들이 조금만 더 떨어졌을 때를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경쟁적으로 현재 디페깅 난 가격부터 0.99불까지 옥션을 진행하면 회복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면 그냥 알고리즘 스테이블을 그만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ㅎㅎ
페깅
뱅크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UST 시총 > 루나 시총이 되는 순간에 발생 가능하다고 하지만
저는 시총이 아니라 유동성 (~= 호가, 매수세) 이 뱅크런을 막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루나의 가격 하락과 함께 페깅 간극이 크게 벌어지면서 오는 루나와 UST에 대한 매수세 저하 (유동성 감소, 신뢰 감소)가 결국 페깅 회복력을 매우 크게 저하시킨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잠시 설명했다시피,
루나 - UST는 기존의 알고 스테이블과는 다르게 레이어 1 메인 넷이 있는 코인으로, 건강한 수요가 있어 페깅의 회복력도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테라만큼 강력한 레이어 1 네트워크를 소유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존재한 적이 없었지요.
저는 줄곧 기존의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페깅에 실패한 이유는 페깅 메커니즘의 설계가 부족했기보다는 스테이블 코인 유틸리티의 부재, 그리고 건강한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익거래를 제외하면 디페깅이 난 스테이블 코인을 매수할 이유가 없으면, 그 코인은 사실 항상 매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UST는 테라 생태계 내에서의 네트워크 가스비와 모든 거래의 기본 매개 (e.g. LUNA / UST, bETH / UST)로 사용되는 점 + 코스모스와 아발란체로 뻗어나가는 UST의 확장성이 강력한 수요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디페깅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를 시장에서 다시 매수하여 생태계로 유입되는 건강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UST를 매수 후 루나로 스왑 하여 루나를 매도하는 차익거래를 하거나, 페깅이 깨졌다는 공포감에 루나를 UST로 스왑 해서 매도하는 - death spiral 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낮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현재 테라 상황을 보면 결과적으로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테라 UST의 실제 수요가 있었냐를 생각해본다면...
UST 시총의 약 75%가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된 UST 였는데,
이것이 연이율 20% 를 받으려는 수요이자 테라 생태계에서 거래의 매개로 계속해서 사용되는 통화로서의 UST의 유틸리티라고 볼 수도 있고,
지급준비금이 고갈되기 전에 있는 이자라도 받고 UST를 이탈하려는 단기적인 용병 수요 - 가짜 수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약 4개월 간 앵커 프로토콜은 지급준비금 (Yield Reserve)를 이용해 20% 이율 중 약 9 ~ 11% 이율을 보조하고 있었는데
앵커 프로토콜이 20% 라는 공격적인 이율을 제공하는 이유는
UST를 예치하면 고이율을 제공받는다는 강력한 유틸리티를 만드는 것과 UST의 빠른 성장/확산을 위하여
마치 스타트업이 시장 점유율을 위해 적자를 내면서도 행하는 영업 / 마케팅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지나쳐 버린 부분 / 깊게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은,
일반적인 스타트업 (예, 페이팔이 마케팅을 위해 거래 수수료를 대신 내주면서 적자 영업을 하는 경우) 은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페이팔 쓰니까 나도 페이팔을 쓰게 되고,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도 페이팔을 쓰게 되고, 페이팔이 네트워크처럼 확장됩니다. 페이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 페이팔이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되면서 - 페이팔을 활용해 부가 가치를 창출할 다양한 기회들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나 앵커 프로토콜은 많은 사람들이 앵커 프로토콜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로 하여금 부가 가치가 창출되는 네트워크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대부분의 자본이 앵커에 가만히 예치된 움직이지 않는 통화니까요. 실제 증가된 UST의 통화량이 테라 알트들과 NFT 들로 계속해서 흘러들어 가는 등의 낙수효과와 승수효과가 일어나거나, UST 통화 속도가 증가하지 못하였습니다.
플랫폼이 네트워크 효과를 위해 중단기적인 적자를 감수하는 모델과, UST 이탈 방지를 위한 지급준비금 (~=마케팅비) 충당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UST의 성장이 네트워크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organic 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MIM 디젠박스를 기점으로 UST의 성장에는 버블이 꼈으니 조심스러운 접근을 했어야 했나 봅니다.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테라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도권을 비롯해 테라폼 랩스 (TFL)의 사람들과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 (LFG)가
이번 테라 사태 내내 너무나도 조용하게… 도대체 어떻게 대처를 하려 하는지.. 무슨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방관했다는 점. 커뮤니티와 아무런 소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UST와 루나에 대한 신뢰 상실에 기름을 부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탈중앙 스테이블 코인인 UST의 회복에 이렇게 중앙화 된 TFL, LFG 조직에 의지를 해야 했다는
아이러니함에
다 알고 샀으면서,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많은 반성을 하였고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무슨 의미인지 좀 깨달은 것 같습니다.
또한 테라 디앱들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파고들다 보니, 거시적으로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각기 디파이 레고 블록들의 동작이 결국 전체 생태계에 어떤 영향과 부담을 주게 되는지, 보다 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느꼈네요. 루나 방의 방장님도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셔서 이러한 부분은 제가 더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뭘 안다고 자만하지도 말고. 겸손해지자. 계속 공부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무지만큼 위험한 것이 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지겨운 소리지만 리스크 관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느꼈는데
항상 모르는 것이 존재하니,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측 가능하면 리스크가 아녔습니다.
Not a blackswan if predictable.
루나 클래식? , 루나?
1. 테라의 하드 포크, 리빌딩이 전 TFL 개발자이자 현 테라 생태계의 Tooling을 개발했던 https://twitter.com/stablechen?s=21&t=ILSAZuwFi0vZrw8RGZw11w 을 필두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테라는 UST 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루나 (LUNA)는 이더리움, 솔라나와 같이 메인 넷 코인의 역할만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TFL와 LFG 같은 중앙화 된 조직을 아예 배제할 것이라 하네요.
아직 아이디에이션 단계인 것 같은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팔로우해서 소식받아보시면 되겠습니다.
2. 아래는 테라를 포크 하되, UST를 살리자는 넥서스 프로토콜 팀을 필두로 한 테라 디앱 개발자 모임의 제안이에요.
https://agora.terra.money/t/luna-go-forward-proposal/7136
3. 마지막은 도권이 직접 올린 테라 부활 방법입니다.
https://agora.terra.money/t/terra-ecosystem-revival-plan/8701
새로운 체인으로 10억 루나 토큰을 발행하며, 아래의 비율로 지급하는 방안입니다.
- 40% 디페깅 전 LUNA, bLUNA, lunaX 등의 보유자 (TFL보유분은 제외)
- 40% 같은 기간 UST 홀더
- 10% 체인정지 직전 LUNA 홀더(마지막 순간까지 네트워크 안정성 제공을 위해 노력함)
- 10% 커뮤니티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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